2017년 9월, 한 복지단체 사무실로 내용증명이 도착했습니다. 1년 전 자원봉사자가 만든 바자회 홍보 포스터에 특정 업체의 폰트가 무단으로 쓰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폰트업체를 대리한 법무법인은 500만 원짜리 폰트 프로그램 견적서를 보내 구매를 압박했고, 단체는 형사고발까지 간 끝에 100만 원을 내고 합의했습니다(더나은미래 보도).
당시 보도는 비영리 현장에서 비슷한 내용증명을 받았다는 사례가 줄을 잇는다고 전했습니다. 홍보 자료 하나 만드는 데 큰돈을 쓸 수 없는 기관일수록 이런 우편물 한 장에 크게 흔들립니다.

사회복지기관이 이 문제에 유독 취약한 까닭
사회복지기관은 후원 안내문, 프로그램 포스터, 교육 자료, 가정통신문처럼 크고 작은 홍보물을 끊임없이 만들어야 하는 조직입니다. 한 달에 두세 번꼴로 새 안내문을 만드는 곳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때마다 폰트가 필요하고, 예산은 늘 빠듯합니다. 영리기업처럼 유료 폰트를 구매할 여유가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검색으로 찾은 무료 폰트에 의존하게 됩니다.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고 해서 어떤 용도로든 써도 되는 건 아닙니다. 개인에게만 무료이거나 특정 용도로만 허락한 폰트가 많은데, 이용약관을 확인하지 않고 내려받아 쓰다가 몇 달 뒤 청구서를 받게 됩니다.
합의금 장사라 불리는 수법의 구조
이런 분쟁 뒤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폰트를 인터넷에 무료로 배포하면서 이용약관 안에 비영리 목적으로만 사용 가능하다는 조건을 눈에 띄지 않게 넣어둡니다. 대부분의 이용자는 약관을 끝까지 읽지 않고 폰트부터 설치합니다. 이후 그 폰트가 영리 목적이나 공공·비영리 기관 자료에서 사용된 정황이 확인되면, 저작권자 측은 법무법인을 통해 내용증명을 보내고 수백만 원대의 합의금 또는 폰트 패키지 구매를 요구합니다. 비영리단체 오픈넷 관계자는 이런 방식을 두고 저작권을 핑계로 물건을 강매하는 권리 남용이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사용한 폰트가 한두 개뿐이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다만 이런 청구가 곧바로 법 위반을 뜻하지는 않으니, 실제로 쓴 폰트의 라이선스 조건부터 아래 항목으로 확인해 보세요.
| 확인 항목 | 왜 중요한가 |
| 사용 목적 | 비영리, 개인, 상업 중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
| 배포, 수정 | 인쇄물, 웹, 영상 등 매체별 조건이 다름 |
| 제공 주체 | 공공기관 배포본인지 개인 재배포본인지 |
저작권 걱정 없이 쓸 수 있는 대안, 학교 안심폰트
가장 확실한 예방책은 처음부터 저작권 분쟁의 소지가 없는 폰트를 쓰는 것입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2022년부터 매년 배포해 온 학교 안심폰트가 대표적입니다. 교육저작권지원센터 웹사이트에서 내려받을 수 있으며, 2025년 기준 누적 65서체 88종에 이릅니다(관련 보도). 교육기관에만 한정되지 않고, 이용 목적과 대상에 제한을 두지 않아 비영리단체와 개인, 사업자까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폰트 자체를 재판매하거나 따로 배포하는 행위까지 되는지는 해마다 배포 공고의 세부 조건을 확인해야 합니다.
후원자 안내문, 프로그램 포스터, 가정통신문, 교육 자료 정도라면 이 폰트만으로 대부분 충분합니다. 게다가 센터는 PPT 12종과 포스터 7종으로 구성된 학교안심 템플릿도 함께 제공하고 있어, 폰트뿐 아니라 디자인까지 고민을 덜 수 있습니다. 교육저작권지원센터 홈페이지에 접속해 안심폰트 메뉴에서 파일을 내려받으면 되고, 별도의 회원가입이나 사용 신청 절차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용증명을 이미 받았다면 밟아야 할 순서
만약 이미 내용증명을 받았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곧바로 합의금을 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당황한 마음에 서둘러 합의부터 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용한 폰트의 실제 라이선스 조건과 위반 여부부터 차분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홍보물 제작을 외주 업체에 맡겼다면 업체 쪽 책임 여부도 함께 따져봐야 합니다. 판단이 어렵다면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편이 안전합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은 132번으로 전화하면 무료 법률상담을 받을 수 있고, 이 서비스는 저소득층에 한정되지 않고 국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소송까지 가지 않고 문제를 정리하고 싶다면 한국저작권위원회의 분쟁조정 제도를 통해 조정을 시도해 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내용증명은 상대방의 주장을 적은 문서일 뿐 법원의 판단이 아닙니다. 한 장 받았다고 겁먹고 바로 돈을 보낼 이유는 없습니다.
기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한 이유
개인의 부주의만 탓하고 넘어가면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담당 직원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기관 차원에서 사용 가능한 폰트를 미리 지정해 두고 그 안에서만 자료를 만들도록 규정으로 못 박아 두는 편이 확실합니다. 신규 직원 교육 자료에 이 규정 한 줄만 포함해도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미지나 영상 등 다른 저작물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 두면 비슷한 위험을 함께 줄일 수 있습니다.
복지인저널의 생각노트
저작권 확인을 담당자 개인의 순발력에만 맡겨 두면, 다음에도 비슷한 우편물을 받을 가능성이 남습니다. 이미 만들어 배포한 자료가 있다면 인쇄물을 다 회수하기는 어렵지만, 홈페이지 게시물과 원본 파일의 폰트부터 안심폰트로 바꿔 두세요. 다음에 다시 인쇄할 때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습니다.
▶ 참고 (2026년 10월 22일 확인) : 더나은미래 비영리단체 폰트 저작권 보도(2018.7), 학교 안심폰트 배포 보도(노컷뉴스), 글꼴 소송과 권리 남용 논란 보도
by 복지인 조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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