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주말마다 서울 인근 텃밭에 갑니다. 밭일을 마치면 이웃 밭 어르신들과 둘러앉아 막걸리 한 잔을 나누는데, 그 자리에서 듣는 이야기가 꽤 쏠쏠합니다. 처음 72평(약 238㎡) 주말농장을 일굴 때만 해도 채소 몇 포기 얻으려는 마음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반나절이 한 주의 에너지가 됩니다. 밭에서 만난 어르신들을 보며, 재가 현장에서 늘 권하던 바깥 활동이 왜 중요한지 다시 확인하게 됐습니다.

치매예방수칙에 걷기와 소통이 들어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치매센터가 보급한 치매예방수칙 3·3·3은 즐길 것, 참을 것, 챙길 것을 각각 세 가지씩 묶었습니다. 항목을 하나씩 읽어 보면 집 밖으로 나가야 지킬 수 있는 것이 꽤 많습니다.
| 구분 | 수칙 내용 |
| 즐길 것 | 일주일에 3번 이상 걷기 생선과 채소 골고루 먹기 부지런히 읽고 쓰기 |
| 참을 것 | 술은 적게 마시기 금연하기 머리 다치지 않게 조심 |
| 챙길 것 | 혈압, 혈당 정기 체크 가족, 친구와 자주 소통 매년 치매 조기검진 |
걷기와 소통이 수칙 안에 함께 들어 있습니다. 2024년 국제 학술지 랜싯의 치매위원회 보고서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신체활동 부족, 사회적 고립, 우울을 포함한 위험 요인 14가지를 꼽았고, 이를 평생에 걸쳐 관리하면 치매의 최대 45%를 막거나 늦출 수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위원회가 꼽은 목록에는 청력 손실, 시력 손실, 고혈압, 당뇨처럼 병원에서 챙길 항목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추정치인 만큼 개인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걷기와 사람 만나기는 병원에 가지 않고도 오늘 당장 손댈 수 있는 항목입니다.
거실 창가 햇볕으로는 비타민D가 부족합니다
어르신 댁을 방문하면 볕 드는 거실 창가에 앉아 계신 분이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볕으로는 비타민D가 거의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영양보충제국 자료에 따르면 비타민D 합성에 필요한 자외선B는 유리를 통과하지 못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피부의 합성 능력도 떨어집니다.
비타민D와 뇌 건강의 관계를 본 연구도 있습니다. 2022년 미국임상영양학회지에 실린 영국 바이오뱅크 연구는 약 43만 명을 분석했습니다. 혈중 비타민D가 25nmol/L 미만인 사람은 50~75.9nmol/L인 사람보다 치매 위험이 약 1.8배 높게 나타났습니다. 관찰 연구라 비타민D 하나로 치매가 결정된다고 볼 수는 없고, 부족한 상태를 오래 두지 않는 게 좋겠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얼마나 쬐면 될까요. NIH 자료는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 사이 5~30분, 매일 또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얼굴과 팔을 내놓는 정도를 소개하면서도 계절과 피부에 따라 달라 딱 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입니다. 여름에는 질병관리청 폭염 수칙대로 가장 더운 시간대를 피하는 게 먼저입니다. 저는 어르신들께 오전 산책을 권합니다. 햇빛과 걷기를 한 번에 챙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나서는 분이라면 집 앞 골목 한 바퀴, 10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다리 힘이 약한 분은 지팡이를 챙기고, 바닥이 평평한 공원 산책로를 고르시는 게 낙상을 줄이는 길입니다.
흙을 만지는 시간이 하루 일과가 됩니다
밭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건 계절이 천천히 보인다는 점입니다. 봄에 감자와 상추를 심고, 여름엔 고추 지지대를 세우며 가지를 따고, 가을엔 고구마를 캔 뒤 김장 배추를 묶습니다. 해마다 이 순서가 몸에 익습니다. 땀 흘리고 나면 머릿속이 한결 가볍습니다. 혼자 사는 어르신에게는 텃밭생활이 하루 일과가 됩니다. 밭 이웃 한 분은 "요즘은 텃밭 재미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물 주러 나오는 날이 정해져 있으니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생긴 셈입니다.
밭일을 처음 시작하는 어르신께는 몇 가지를 꼭 말씀드립니다. 작업은 해가 뜨거워지기 전 이른 아침에 끝내고, 챙 넓은 모자와 물병을 챙기시라고요. 쪼그려 앉아 오래 김을 매면 무릎과 허리에 무리가 가니 낮은 의자를 하나 두시는 게 좋습니다. 처음부터 넓게 욕심내기보다 상추와 고추처럼 손이 덜 가는 작물 몇 포기로 시작하시면 됩니다. 저도 첫해에는 72평을 다 채우지 못하고 절반은 비워 뒀습니다.
공식 연구도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은 2021년 5월, 보건복지부와 협업해 전북 정읍과 진안 치매안심센터의 경도인지장애 어르신에게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주 1회 2시간씩 10회 운영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적용 전과 비교해 인지기능 점수(MMSE-DS)는 19.4% 올랐고, 우울감(SGDS-K)은 68.3% 줄었습니다. 대조군 없이 전후를 비교한 결과라 효과를 크게 해석할 일은 아닙니다. 2021년 정신간호학회지에 실린 메타분석은 대조군이 있는 국내 연구 21편을 묶어 봤는데, 원예치료가 치매 어르신의 인지기능에 중간 정도 효과를 보였습니다. 흙 속 미생물이 기분을 바꾼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아직은 쥐 실험 단계라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밭에서는 말이 저절로 오갑니다
주말농장에서는 인사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누구네 고추가 먼저 붉었는지, 진딧물은 뭘로 잡는지 이야기가 오갑니다. 모종을 나누고, 수확한 가지를 건네고, 다음 주에 또 만납니다. 막걸리 한 잔씩 앞에 두면 밭 이야기는 어느새 자식 걱정, 병원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늘 보이던 얼굴이 한 주 안 보이면 다음 주엔 누군가 꼭 안부를 묻습니다. 따로 모임을 만들지 않아도 서로 살피는 사이가 됩니다. 사회적 고립이 치매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는 점을 생각하면, 밭은 이웃을 만드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몸이 불편해 밭까지 가기 어려운 분도 방법은 있습니다.
| 몸 상태 | 바깥 습관 |
| 잘 걸으심 | 주말농장, 공동텃밭 또는 오전 산책 |
| 오래 서기 힘드심 | 높이 있는 상자텃밭 또는 경로당 앞 벤치 |
| 외출 어려우심 | 베란다 화분 또는 창문 열고 볕 쬐기 |
서울 여러 자치구가 매년 봄 상자텃밭을 분양합니다. 2026년 서대문구는 세트당 8,600원, 원가의 약 20%를 자부담으로 받았고 65세 이상은 방문 신청도 받았습니다. 모집 시기와 조건은 구마다 다르니 3월 전후 구청 도시농업 담당 부서에 확인해 보세요. 치매안심센터나 복지관에서 원예 프로그램을 여는 곳도 있습니다. 혼자 나가기를 망설이는 어르신이라면 이런 모임이 바깥으로 나오는 첫걸음이 되기 쉽습니다.
복지인저널의 생각노트
재가 현장에서 어르신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려 주는 건 외출 횟수입니다. 장 보러 나가던 분이 안 나가시고, 경로당에 발길을 끊으시면 몇 달 뒤 기억력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를 여러 번 봤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담할 때 "요즘 몇 번 나가세요?"를 꼭 묻습니다. 돌봄 계획에 햇빛 드는 시간 산책 한 번, 화분 하나를 넣는 일은 비용이 거의 들지 않습니다. 어르신을 밖으로 이끌 이유를 하나 만들어 드리는 것, 생활지원사 선생님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입니다.
▶ 참고 : 보건복지부 중앙치매센터 치매예방수칙, 랜싯 치매위원회 보고서(2024년), 농촌진흥청 치유농업 프로그램 결과(2021년 5월)
by 복지인 조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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