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이 되면 인천 계양구 소망의 집 마당은 아침부터 분주해집니다. 절인 배추가 한쪽에 높이 쌓이고, 고무장갑을 낀 대원들이 양념 통 앞에 둘러앉습니다. 모두 해병대 출신입니다. 이 장면은 매년 거의 같은 모습으로 되풀이되어 왔습니다. 처음 손을 모은 해는 1997년이었습니다.

1997년 인천에서 시작된 모임
해병대 참사랑봉사단은 1997년 인천 지역의 해병대 출신들이 뜻을 모아 만든 단체입니다. 전역한 사람들끼리의 친목 모임으로 머물 수도 있었지만, 이들은 지역사회에 실제로 보탬이 되는 일을 하자고 방향을 정했습니다. 거창한 사업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오면 먼저 가 보자는 것, 출발점은 그 정도였습니다.
해병대 특유의 단결력은 봉사 현장에서 그대로 힘이 되었습니다. 연락 한 번이면 사람이 모이고, 맡은 일은 끝까지 마무리합니다. 처음 보는 사이라도 해병대 출신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금방 한 팀이 됩니다. 이런 방식이 30년 가까이 유지된 데에는 첫 인연을 맺은 한 시설의 역할이 컸습니다.
소망의 집 김장봉사, 겨울마다 지킨 약속
봉사단의 대표 활동은 계양구 소망의 집과 함께해 온 김장봉사입니다. 매년 겨울이면 대원들은 빠짐없이 모였습니다. 이렇게 담근 김장은 시설 어르신들이 1년 동안 드실 소중한 찬거리가 되었습니다. 소망의 집 한 곳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3개 기관과 함께 나누는 공동 나눔으로 이어졌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생활시설에서 김장은 1년 중 손이 가장 많이 가는 행사입니다. 배추를 절이고 씻어 물기를 빼는 일, 양념을 버무리는 일, 다 담근 통을 옮겨 저장하는 일까지 대부분 힘을 써야 하는 작업입니다. 직원 몇 명과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만으로는 하루 이틀 안에 끝내기 어렵습니다. 체력 좋은 일손이 한꺼번에 들어와야 하는 날, 대원들은 그 자리를 정확히 채웠습니다.
대원들은 이 일을 개인 일정보다 앞에 두었습니다. 요청이 오면 생업을 잠시 미루고 봉사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소망의 집 원장님은 해마다 대원들을 맞으며 매년 변함없이 찾아오는 그 손길이 시설에는 큰 힘이 된다며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한 번 다녀가는 봉사자보다 매년 같은 시기에 같은 얼굴로 찾아오는 봉사자가 운영에 훨씬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시설에서는 일정을 미리 세울 수 있고, 어르신들도 낯을 덜 가리시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차이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구분 | 일회성 봉사 | 정기 파트너 봉사 |
| 일정 | 행사 직전 확정 | 해마다 같은 시기 미리 계획 가능 |
| 업무 숙련 | 매번 새로 설명 | 역할 분담 자동 |
| 어르신 반응 | 낯선 얼굴 경계 | 익숙한 얼굴 반김 |
| 맡길 수 있는 일 | 가벼운 보조 | 운구 등 무거운 일 |
마지막 줄의 차이가 특히 큽니다. 신뢰가 쌓여야 시설도 어려운 부탁을 꺼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인연은 김장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장례 지원까지 맡게 된 날
어느 해, 원장님이 조심스럽게 다른 고민을 꺼냈습니다. 여름이 되면 어르신들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세상을 떠나시는 일이 생기는데, 장례 준비와 운구를 도울 사람이 모자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시설 어르신 가운데에는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거나 장례를 치러 줄 사람이 마땅치 않은 분도 계십니다. 그럴 때는 시설이 마지막 절차까지 직접 챙겨야 하는데, 관을 들고 계단을 내려가는 일만 해도 성인 남성 여럿이 필요합니다. 대원들의 대답은 길지 않았습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저희가 하겠습니다.”
그 뒤로 봉사단의 활동에 장례봉사가 더해졌습니다. 한 달에 두 차례 이상 이어지는 장례 지원은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운구에는 체력이 필요하고, 고인을 보내는 자리는 매번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그래도 대원들은 이 일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살아 계신 동안 곁을 지키는 일만큼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일도 봉사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활동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활동 | 장소·대상 | 내용 |
| 김장 봉사 | 계양구 소망의 집 외 3개 기관 | 매년 겨울 어르신 1년 식량 |
| 장례 봉사 | 소망의 집 어르신 | 장례 준비·운구 월2회 이상 |
| 교통 봉사 | 교통 혼잡 구간 | 보행·통행 안전 |
| 환경 정화 | 지역 거리 | 거리 정화 활동 |
| 지역 안전 | 지역사회 전반 | 안전 활동 지원 |
나이 든 대원들이 지금도 서 있는 자리
세월이 흐르면서 대원들도 나이가 들었습니다. 젊은 시절 같은 체력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활동의 폭은 오히려 넓어졌습니다. 교통이 혼잡한 곳에서는 사람들의 안전을 살피고, 거리에서는 환경 정화를 이어 가며,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지역 안전 활동에 손을 보탭니다. 예전처럼 무거운 짐을 번쩍 드는 일은 젊은 회원에게 넘기고, 오랜 경험이 필요한 현장 조율은 선임 대원이 맡는 식으로 역할을 나눠 온 것도 오래 버틴 비결입니다. 몸은 예전 같지 않아도 봉사하려는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말을 대원들은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현재 봉사단은 한상태 회장과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필자를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사무국장 일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요청 전화를 받고, 대원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당일 현장에서 일을 나누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름을 크게 내세우는 단체는 아닙니다. 요청이 오면 가고, 일이 끝나면 조용히 돌아옵니다. 1997년에 정한 원칙이 지금까지 바뀌지 않은 셈입니다. 회원 모집 공고를 크게 낸 적도 없지만, 활동을 지켜본 지역 해병대 출신들이 하나둘 합류하면서 명맥이 이어져 왔습니다.
복지인저널의 생각노트
노인복지 현장에 있으면 봉사 신청 자체는 꾸준히 들어옵니다. 신청이 몰리는 쪽은 대부분 행사 보조나 말벗 봉사입니다. 공지를 올리면 며칠 안에 인원이 찹니다. 운구나 장례 준비에는 지원자가 거의 없습니다. 체력이 많이 들고, 장례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서입니다. 그러면 그 일은 시설 직원들 몫이 되고, 그날은 어르신 돌봄에 쓸 손이 그만큼 줄어듭니다.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보니, 참사랑봉사단이 한 시설과 30년 가까이 관계를 이어 온 것도 이 빈틈을 채워 왔기 때문입니다. 봉사단은 하고 싶은 활동을 미리 정해 두지 않았습니다. 시설이 꺼낸 고민을 듣고 그에 맞춰 할 일을 늘려 왔습니다. 새로 시설과 인연을 맺으려는 봉사단체나 직장 봉사팀이라면 첫 방문 때 행사 날짜보다 요즘 일손이 가장 모자란 일이 무엇인지부터 물어보세요. 시설도 할 일이 있습니다. 부탁할 일을 김장, 장례 지원처럼 건별로 나눠 미리 알려 주고 연락 담당자를 한 사람으로 정해 두면, 봉사단이 해마다 같은 일을 맡기가 쉬워집니다.
by 복지인 조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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